서울고는 1985년 대통령배와 청룡기 우승을 거머쥐었다. 서울고가 마지막으로 우승하던 해에 현대 김동수는 3학년 포수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 뒤 아직 우승 소식이 없다. 오랜 꿈은 올해 이뤄질 뻔했다. 제41회 대통령배대회에서 서울고는 김동수의 22년 후배인 이형종의 역투에 힘입어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이형종의 눈물'로 남은 아쉬운 패배였다. 김동수는 5월 16일 수원구장에서 후배 이형종을 만나 격려했다. 39살 포수는 18살 투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리고 LG 입단을 확정지은 이형종의 과제는 무엇일까. |
결승전에서 눈물 흘린 서울고 투수 이형종(왼쪽)이 22년 고교 선배 현대 포수 김동수를 만났다.(사진 김대영) |
김동수(이하 김) 오랜만이다. 몸은 좀 어떠냐.
이형종(이하 이)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제(5월 15일)부터 강동구청 부근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근력 보강을 하고 있습니다.
김 네 경기는 가끔 봤다. 힘있게 잘 던지더라. 1학년 때 남해 전지훈련에서 처음 봤지. 그땐 어떤 투수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2학년 때 추계리그에선 놀랐다. 경기고전이던가 삼진을 스무 개쯤 잡았지?
이 예.
김 또래 타자들의 방망이가 전혀 따라가지 못하던데 고등학교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지. 내가 뛰던 때 박동희(작고)가 그랬지. 박동희의 공은 워낙 빨라 타자들이 말 그대로 손도 못 댈 정도였다. 안타 하나 치면 “운이 정말 좋았다”고들 했으니까. 올해 고교선수 가운데서는 형종이가 최고인 것 같다. 오늘 LG와 계약했다고 들었는데 잘 됐다. (임)태훈이가 두산으로 갔고 넌 LG이니 잠실에서 둘이 던지면 볼만하겠다.
■우승과 준우승
이 대통령배 결승전을 TV로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김경기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잠실에서 LG하고 경기하고 하고 있었는데 경기 중간중간에 더그아웃 옆 방으로 가 TV를 봤어. LG 김영수 사장도 계시더군. 6회쯤에 광주일고에 7-6 한 점 차로 앞서있다고 해서 조마조마했지. 한 타석 다시 돌고 다시 보니 9-6이더군. ‘야, 드디어 우승했구나’싶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니 9-10으로 역전패했다더구나. 정말 아쉬웠다. 8강전과 4강전도 봤는데 그때 너무 많이 던진 것 같았다. 결승전 때는 힘이 떨어졌었지? 릴리스포인트가 왔다갔다하는 게 보였어. TV로는 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네가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팀에서 저를 믿고 있었습니다. 저 때문에 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마음 먹은 대로 공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김 너 때문에 이긴 경기도 많다는 것도 생각해야지. 프로에서도 투수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야. 그만큼 야구는 투수가 중요해. 너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료도 아니고 선배도 아니야. 너만한 투수가 없었다면 팀이 예선을 통과하고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잘한 거야. 우리 팀 투수들도 2,3일 연속으로 30,40개 던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혼자서 그렇게 많이 던지면 지치지 않을 수가 없지. 고등학교 야구는 투수 한두 명이 계속 던져야 하니 힘들어.
이 선배도 저처럼 울었던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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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 포수의 손(왼쪽)과 18살 투수의 손.(사진 김대영) |
김 왜 없었겠니. 중학교 때 많이 울었지. 포지션이 포수인데 중학생이 무슨 힘이 있나. 상대팀에서 1루만 나가면 나를 노리고 계속 도루를 하는데 알면서도 못 잡으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프로에서는 한 번 운 적이 있어.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LG가 해태에 졌어. 시리즈가 끝난 뒤 준우승 트로피를 받으러 나가야 하는데 눈물이 나서 도저히 나가지 못하겠더라. 이겨서 흘리는 감격의 눈물보다는 진 뒤 뼈 아픈 눈물이 기억에 오래 남아.
이 선배는 대통령배에서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가 되셨고 우승한 경험이 많지 않습니까.
김 학교 다니면서 맛본 우승이 특별하지. 2학년 때(1985년) 대통령배 우승할 때는 마침 수학여행기간이었어. 경주로 내려간 친구들이 라디오를 켜놓고 중계를 들었다고 하더군. 지금도 친구들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해. 우승을 하면 야구 팬이 되는 친구들도 많이 생기는 것 같고. 넌 준우승하고 나니까 어땠어.
이 (침묵하다)아쉽습니다.
김 ‘차라리 결승전에 오르지 말 걸’하는 생각도 들 거다. 승부의 세계는 그런 것이야.
이 선배가 대통령배 우승했을 때가 궁금합니다.
김 우리 때는 이용호(전 태평양)와 박형렬(전 OB)이라는 뛰어난 투수 두 명이 있었어. 그때는 투수 등판 제한 규정이 있어 두 명이 번갈아 던졌어. 팀 구성이 좋았지. 2학년 때는 동기에 임형석(전 OB, 롯데), 김경수(전 쌍방울), 3학년 선배들로는 김병효(현 서울고 감독), 김풍기(KBO 심판위원) 등이 있었어. 1984년에 대통령배와 봉황기, 이듬해에 대통령배와 청룡기 우승기를 받았지. 1985년이 마지막 전국대회 우승이니 결국 서울고는 내가 졸업하고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구나. 아마 네가 태어나기도 전일 걸?
이 제가 1989년생입니다.
김 거 봐라. 내가 왜 경기 중에 TV로 결승전을 봤는지 이해하겠지.
■나의 고교시절
이 선배의 고교 시절은 어땠습니까.
김 벌써 20년 전 일이군. 아무래도 사춘기이니 놀고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친구들도 있었고.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10대 소년들이 야구에 전념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자기 재능만 믿고 훈련을 게을리 하는 선수들이 많아. 그런 선수들은 보통 일찍 시들지. 운동을 하다 보면 수업에 잘 들어가지 못해. 나도 그랬고.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 한다. 언제 친구들 많이 만나라고 얘기해 준 적이 있었지?
이 네. 많이 사귀었어요. 선배는 학교 다니면서 어떻게 친구들과 어울렸습니까.
김 우리 때야 이렇다 할 놀이 문화가 없었어. 사실 한두 번씩 술을 마시긴 했다. 한 번은 친구들과 신림동 근처 맥줏집에 간 적이 있었어. 돈이 좀 생겼거든. 사복을 입긴 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 주인에게 “저기요, 맥주는 안 마시구요, 통닭만 먹고 갈게요”라고 말했지. 하지만 야구하는 동료들 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친구는 없었어.
이저희 동기들도 흡연은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술은 가끔씩. 딱 두 번 술자리에 가봤습니다. 저는 많이 마시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민등록증 보여달란 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노래방에 한 번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절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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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때부터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사진 김대영) |
김 팬카페도 생겼다며. 여자 친구 있니?
이 없습니다.
김솔직히 말해라.
이 없어요. 아는 여학생들은 있는데 사귀는 여자친구는 없습니다.
김 요새는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겠지만 우리 땐 팬레터란 게 있었지. 고교 때 처음 여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여자친구를 사귀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지. 프로에 와선 인기가 좋았는데 1994년 류지현, 서용빈, 김재현이 들어오면서 (팬레터)물량이 그쪽으로 쏠리더라고. 그래도 꽤 받았는데 결혼한 뒤론 감감 무소식이다.
■프로란
김이제 프로로 올 텐데 제구력이 흔들리는 것 같더라. 2학년 때는 컨트롤이 기가 막혔는데 3학년 때 스피드를 의식하면서 무너진 것 같다.
이그렇습니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어려워요.
김 2학년 때는 제구력이 좋았는데 3학년이 되고 스피드가 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은 있겠지만 지나치게 힘으로만 가고 있어. 공을 던질 때 고개가 왼쪽으로 틀어지고 있어. 그러면 스트라이크존이 흔들리게 마련이지.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많이 쓰다 보면 닳게 돼 있어. 계속 빠르게, 빠르게만 가다 보면 후반에 공 끝이 무뎌질 수밖에 없지.
이 3학년 들어오면서 스피드를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선 타자에게 안타를 맞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어요. 그러니 힘이 자꾸 들어갔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던질 때는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김 물론 파워 피처가 매력이 있지. 타자 입장에서 가장 치기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게 빠른 공이거든. 나도 포수로 공을 많이 받아봤지만 잘 던지는 투수들의 직구는 미트 느낌부터 다르지. 하지만 컨트롤 위주로 던지는 피칭을 연구해봐. 어떤 타자가 어떤 공에 약한지도 연구를 많이 해야 하고. 이게 되면 타자를 쉽게 상대할 수 있어. 네게 한 경기만 남아있다면 힘으로만 갈 수도 있지. 하지만 결국은 한화 송진우 선배처럼 오래 던지는 투수가 훌륭한 선수야. 짧은 기간 돈을 많이 벌고 그만두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야. 네가 배운 게 야구다. 나이 들어서도 계속 야구를 하는 것만큼 행복이 없어. 요즘은 프로 코치들이 전문 지식이 늘었으니 열심히 하면 될 거다. 프로에 대한 두려움은 혹시 있나.
이설레면서도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김 신인들이 처음 프로에 들어오면 자기 자리를 알게 된다. 내 자리를 차지해야 밥줄이 끊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돼. 1군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열심히 해야 해. 내가 신인 때만 하더라도 선배들이 그렇게 열심히 훈련한 건 아니었어.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달라. 신인과 프로 2년생의 차이는 매우 크다. 프로에 오면 너보다 공은 느리지만 경기 운영이 앞서는 투수들을 볼 수 있을 거야. 프로에 오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라. 신인 때부터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건 미련한 짓이야.
이 저도 그렇고 동기들은 대다수가 프로 입단이 1순위입니다. 선배 때는 어땠습니까.
김 우리 땐 대학 진학이 우선이었지. 동기 가운데 박형렬만 OB로 갔고. 그 전에는 문희수(전 해태) 선배처럼 고졸 신인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 지금은 대학 진학보다 프로 입단이 더 낫다는 생각이야. 기량을 빨리 익힐 수 있고. 대학에 진학하면 아무래도 병역 부담이 더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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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 대해 설레이고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사진 김대영) |
이 선배는 연세가 많습니다. 몸관리가 철저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래 선수 생활을 하는 비결이 있습니까.
김 ‘나이’라고 해라. 특별한 비결은 없지. 흡연은 하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야. 나이가 들어 친구들을 만나면 그런 자리가 많아진다. 하지만 친구들한테도 은퇴할 때까지 좀 참아달라고 해. 내 현역 생활은 앞으로 1,2년 정도 남았을 거다. 그동안 내가 세웠던 목표를 꼭 지키려 한다. 훈련은 자기와의 약속이야.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게 굳어져야 해. 컨디션이 좋을 때 운동량을 늘리고, 나쁘면 쉬는 식으로 하다 보면 몸이 ‘최상의 상태’를 기억하지 못해.
이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김 보통 직장인들과 비슷하지. 지난 주에도 놀이동산에 다녀왔고. 쉬는 날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야. 리듬을 깨선 안되니까. 홈경기 때는 오전 8시30분, 원정 때는 9시30분에 일어나. 낮 12시쯤에 일어나는 선수들도 있어. 선수마다 자기 관리법은 다르겠지만 난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야. 덕분에 딸 유치원 버스도 태워줄 수 있고. 하지만 아들이 초등학교 가는 건 못 본다. 그런데 아침은 잘 챙겨먹나?
이 오전7시 조금 넘어 일어나 7시40분에 아침밥을 먹습니다. 잠은 오후 11시쯤에 잡니다.
김 프로에서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해. 내년에는 같은 경기장에서 보겠구나. 태훈이를 처음 수원구장에서 상대했는데 공이 좋더라. 첫 타석에서 직구를 안타로 때려냈는데 다음 타석부턴 줄곧 변화구만 던지더군. 프로는 냉정해. 못 쳤어도 기분은 좋았어. 그런데 넌 날 만나면 어떤 공을 던질 거냐?
이 선배가 2루타, 3루타, 홈런을 하나씩 친 상황이라면 안타 하나 내 드리겠습니다. 사이클링히트 기록 선사해드리죠(웃음). 하지만 다른 상황이라면 무조건 삼진으로 잡겠습니다.
김 점수 차가 많이 나면 알아서 잘 던져라(웃음). 몸에 맞히면 안돼.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니 기분이 좋군. 10년 뒤에는 형종이가 내 자리에 있고 형종이 자리에는 다른 후배가 있겠지.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1990년에 입단해 신인왕을 받은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어느덧 지금 내 위로는 송진우 선배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유혹을 이기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을 해 주고 싶군. 프로 선수에게는 여러 유혹이 많다. 하지만 정한 목표가 있다면 참아내야 한다.
SPORTS2.0 제 52호(발행일 5월 21일) 기사
최민규, 심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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