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6월 13일 의회에서 파시스트를 옹호하는 연설을 하던 호세 칼보 소텔로 의원이 암살되자 의회의 민족 전선 의원들이 사직을 했다. 그것은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는 신호였다. 

프랑코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완강한 저항을 받게 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코는 자기 식으로 철저하게 규율이 잡힌 외인 부대와 레굴라레스(모로코의 정예부대)를 투입할 작정이었다. 

공화국을 구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보다도 '인민'을 무장시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군대만이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민족 전선 진영에 합류할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공화파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무장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 했다. 
민족 전선측은 지방 관리들이 시민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준 도시들에서만 패배했다. 바르셀로나의 주요 광장과 공공 건물들이 고데드 장군이 이끄는 부대에게 점령당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도시를 다시 탈환하고 고데드를 사로잡았다. 국방성안에서는 사람들이 반란군을 분쇄할 방법은 오직 노동자들을 무장시키는 길뿐이라고 아사냐를 설득하고 있었고, 아사냐는 무기를 나누어 주라고 명령을 내렸다. 반란군은 빠른 속도로 스페인 전국토의 1/3 을 장악해 버렸다 

산후료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고, 고데드는 바르셀로나에서 체포되었다. 이제 반란군의 세력판도에서 프랑코의 유일한 경쟁자는 몰라 장군뿐이었다. 
1936년 7월 30일, 프랑코는 지브롤터 해협 너머로 병력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내란이 맨 처음 시작될 때부터 '도움이 없다'는 것이 양측을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공화주의자들 쪽은 무기와 장비가 너무도 부족한데다가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거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의 기업가들은 민족 전선 쪽을 지원했고, 미국의 회사들은 그들에게 석유와 트럭을 팔았다. 프랑스의 사회주의 지도자이며 수상이었던 레옹 블룸은 유럽의 주요 강대국을 설득하여 불간섭 조약에 서명하도록 했다. 대체로 서유럽 국가는 이를 따랐지만, 독일과 이탈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군사와 장비를 보내 주고 있었다. 

한편 '파시스트화'에 위협을 느낀 소련은 불간섭 조약의 서명에 참석했으면서도 공화파쪽에 무기와 장비를 보내주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11월 8일 히틀러의 비행기들이 폭격을 시작하는 동안, 호세 바렐라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공격을 감행했다. 그 때, 제복과 철모를 착용한 3천 명의 병사들이 마드리드 대로위를 행진해 오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파시즘의 물결을 막는 것을 돕기 위하여 세계 각국에서 지원해 온 국제 여단의 제1진이었던 것이다. 인민 전선의 승리가 있고 나서 약 두달 후에 미국의 의용병 제1진이 스페인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폭격은 연일 계속되고 있었지만 전쟁은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되었다. 

1937년 4월 26일, 독일의 공군 폭격기 편대가 바스크의 옛 수도 게르니카라는 소도시를 폭격한다. 그날 오후의 희생자들은 마침 마을광장에서 시장을 벌일 시간에 맞추어 나온 사람들로 1천 6백명 이상이 죽었고, 9백명이 부상했다. 이는 일반폭탄과 소이탄의 치사율을 시험하기 위한 독일의 '실험'이었다. 
1937년 5월 초에, 바르셀로나의 정치적 분쟁은 내란속에서의 또 하나의 내란이 되어 있었다. POUM 이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결합한 조직에 반기를 들고 아나키스트들의 조직인 CNT를 지지한 것이다. 반란군에 대항해서 함께 싸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죽이게 된 것이다. 
1937년 6월, 민족 전선이 바스크 지방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빌바오에서 승리하자 바티칸이 스페인에서의 파시스트 운동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1938년 초에 프랑코는 단 한 번의 대공세를 취하여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했다.1939년까지 3년 이라는 긴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마드리드는 3월 26일의 대공세로 함락되고, 1939년 4월 1일 프랑코 장군은 부르고스에서 전투종결을 선언한다. 1975년까지 매년 4월 1일은 전승기념식이 마드리드에서 열리곤 했다. 1936년에서 1944년까지 대량 처형된 목숨이 또 40만명이었다. 다른나라로 피신한 사람들의 숫자도 그와 비슷했다. 공화파에 가담한 수만 명의 고참병들은 총살당하거나, 20년에서 30년형을 선고받았다. 공화국 시대의 모든 개혁은 백지화되었다. 

출처 : 스페인 이야기(www.espania.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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